[12월 8일. 여운종 한국의 탄생화 연재] 여자의 마음은 갈대라지만, 갈대의 꽃말은 신의, 믿음, 지혜, 음악.
오늘 세계의 탄생화는 [갈대]입니다. 이에 맞추어 한국의 탄생화도 [갈대]와 그의 친구들인 갈대속의 [달뿌리풀]과 [큰달뿌리풀], 왕갈대라 불리는 [물대]와 [무늬물대]로 정했습니다. 갈대속에는 자생식물이 3종 있지만, 물대속 물대와 무늬물대는 사람이 심어주어야 자라는 재배식물입니다.
모두 다 물을 좋아해 냇가나 바닷가에 사는 친구들입니다. 전문가들이야 세세하게 이 아이들의 모습을 다 구별할 수 있겠지만 우리 일반인들이야 그냥 퉁쳐서 [갈대]라고 이야기해도 무방할 듯합니다. 그래도 [달뿌리풀]은 참 이름이 예쁘죠? 저도 한국의 탄생화를 제작하면서 처음 접한 이름인데 알고 보니 냇가에 흔히 있는 아이랍니다. 갈대보다는 조금 작고 이삭이 갈대보다 가지런하며 뿌리가 땅 위로 뻗는 특성이 있답니다. 그러고 보니 지난 가을 안양천에서도 갈대도 아닌 것 같고 억새도 아닌 녀석들은 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갈대의 꽃말은 [신의], [믿음], [지혜], [음악]이고 달뿌리풀의 꽃말은 [유용]입니다. 좋은 말은 다 차지한 것 같지요.
지금쯤이면 가을에 피었던 갈대 이삭이 눈과 서리에 그대로 얼어서 온몸으로 겨울바람을 맞고 있을 텐데요, 눈에 덮인 갈대의 사진 한 장이 보는 이의 마음을 애처롭게 합니다.
사람의 도움 없이 스스로 번식을 하는 자생식물과 귀화식물을 기준으로 우리나라에 사는 풀과 나무들은 대략 4,300여 종에 육박합니다. 장미, 백합, 튤립, 은행나무, 메타세쿼이아 등 재배식물과, 벼, 보리, 옥수수, 감자, 수박, 참외, 오이 등 재배작물 거기에 다양한 품종의 원예식물, 양치식물과, 선태식물, 지의류와 해조류까지 합치면 1만 여종의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한국의 탄생화는 이 아이들 대부분에게 생일을 정해주었습니다. 그 생일을 따라 일 년을 돌게 되면 우리나라에 사는 나무와 풀들의 이름을 다 한 번씩은 불러보게 됩니다. 물론 앞으로 세세하게 조정을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지만 뼈대는 잡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아이들의 이름 중에는 며느리밑씻개, 개불알풀 등 이름이 못나서 예쁜 이름으로 바꾸어 주었으면 하는 아이들도 있고, 하루빨리 우리 이름을 지어 주었으면 하는 외국에서 이사 온 아이들도 있고, 그냥 갈대로만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달뿌리풀이라는 근사한 이름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누군가의 이름을 불러주는 일. 그것은 그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으며 그에게 관심이 있다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내게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시인의 [꽃]에 나오는 이 시구절은 참으로 멋지지 않습니까?
산과 들에 나가 풀과 나무들의 이름을 불러주고 아는 척을 해 주면 그 아이들도 저에게 인사를 하는 것을 느낍니다. 그러면 그 옆에 제가 아직 이름을 모르는 어떤 나무와 풀들은 자기도 알아봐 달라고 안달을 하지요. 그리면 어느새 그 아이들이 모두 내게 와 꽃이 되어줍니다.
사람의 사이도 그런 것이 아닐까요? 내가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누군가는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되었고, 누군가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형이 되고 아우도 되고, 선생님이 되고 누군가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오늘 12월 8일. 저는 오늘 누구의 이름을 부르게 될까요? 그리고 그는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