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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7일. 여운종 한국의 탄생화 연재] 멋진 비자나무와 다르게 기껏해야 불쏘시개로나 쓸 수 있었을 개비자나무

[12월 7일. 여운종 한국의 탄생화 연재] 멋진 비자나무와 다르게 기껏해야 불쏘시개로나 쓸 수 있었을 개비자나무

`개`는 인류의 오랜 친구로 인류학자들은 개가 없었으면 2~3만 년 전 네안데르탈인과의 진화 생존 경쟁에서 인류가 이길 수 없었을 것이라 합니다. 개는 사람에게 부족한 여러 가지 감각적인 일과 용맹함과 충직함을 모두 갖춘 훌륭한 파트너입니다. 멧돼지를 사냥하는 사냥꾼도 개와 함께 사냥하는 경우와 사냥꾼들끼리 사냥하는 경우의 성공률은 현격하게 다르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식물의 세계에서는 나무나 풀의 이름 앞에 `개`라는 접두어가 붙어있으면, 원물보다 못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개비자나무]도 [비자나무]와 비교하면 좀 많이 초라한 것이 사실입니다.

일단 생김에서부터 차이가 많이 납니다. 비자나무는 25m까지 자라는 늘씬한 큰키나무(교목)인데 반해, 개비자나무는 기껏해야 3~4m까지 꼬불꼬불 자라는 떨기나무(관목)입니다. 비자나무로 만든 바둑판은 명품 바둑판이고, 목재가 오래도록 썩지 않아 장례에 쓰이는 관이나 배의 밑창, 가구 등의 재료로 소중하게 쓰였지만, 개비자나무는 기껏해야 불쏘시개로나 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니 비(非) 자를 닮은 잎의 생김은 비슷하여 개비자나무가 되었습니다.


APG 분류에서는 비자나무와 같이 [주목과]로 분류하기도 하지만, 앵글러 분류를 따르는 국립수목원 자료 등 대부분의 도감에서 개비자나무는 비자나무와 다른 별도의 가문인 [개비자나무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개비자나무과]에는 [개비자나무속] 1속에  [개비자나무], [눈개비자나무], [큰개비자나무] 3종이 자생나무이고,  [큰개비자나무_파스타기아타]라는 원예종 1종이 있는데 이렇게 4종 만이 한국의 탄생화  목록에 등록된 아주 작은 가문입니다. 그나마 관찰기록을 보면 개비자나무 이외에는 거의 주변에서 관찰하기 어렵습니다.

개비자나무를 한국특산식물로 분류하는 자료도 있지만 최근 일본과 히말라야 근처 등 일부 아시아 지역에서 자생하는 것으로 밝혀져 한국특산식물에서는 제외되었습니다.

비자나무보다 나은 장점도 있는데 개비자나무는 열매를 그냥 먹을 수도 있고, 비교적 추위에 강해 남부 지방에서만 자랄 수 있는 비자나무와 다르게 중부지방에서도 잘 자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생김이 못난 까닭인지 사람들이 심어 주지 않아 만나기는 참 어려운 나무입니다.

개비자나무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나무는 딱 한 그루가 있습니다. 정조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가 합장된 경기도 화성의 융릉에 있는 개비자나무입니다. 천연기념물 제504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개비자나무인데 융릉을 만들 때 함께 심어진 나무로 추측됩니다. 크다고 해봐야 키가 4m입니다. 융릉은 사적 206호로 지정되어 있고 무엇보다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있는데 천연기념물까지 있어 그 가치가 더욱 높아졌습니다.

효심이 깊었던 정조는 사도세자가 묻힌 이 융릉에 자주 행차하였습니다. 왕의 잦은 행차는 다양한 문화를 만들고 건축물을 만들었습니다. 수원의 자랑거리인 `화성행궁`은 정조가 행차 시 머물던 임시 거쳐였고, 수원이 `효의 도시`라 이름 붙게 된 것도 이 때문입니다. 지금도 일 년에 한 번씩 `정조대왕 능행차` 행사가 열리는데 제법 큰 문화 행사가 되었습니다. 길도 바뀌었습니다. 원래 서울에서 남부 지방으로 내려가는 경부라인은 남대문 - 사당 - 남태령 - 과천 - 인덕원 - 의왕 - 수원으로 연결되는 동부 라인이었지만, 이 라인이 사도세자의 죽음과 관련이 있는 관료의 집 앞을 지나는 코스인지라 그 집을 피해  새로운 길을 개척한 것이 한강에서 노량진, 금천 시흥, 안양, 의왕, 수원으로 연결되는 지금의 경부라인이 되었습니다. 이때 길을 새로 내는 과정에서 다리도 여럿 새로 놓았는데 안양의 만안교도 그중 하나입니다. 제가 다닌 만안 초등학교, 살고 있는 안양시 만안구의 유래가 되었습니다.

의왕에서 수원으로 넘어가는 고개의 이름이 지지대(遲遲臺) 고개입니다. 遲(더딜지, 늦을지)의 지지대고개가 된 연유도 융릉 행차를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던 정조가 수원을 떠나는 것이 아쉬워 더디게 가자하고 `지`, `지`라고 자꾸 하명한 데서 비롯된 이름이라 합니다. 결국 정약용을 시켜 수원 화성을 쌓고 수원 도심을 한양과 똑같이 만들고 수원으로 수도를 옮기려 하였지만 원인 모를 죽음으로 정조가 승하하자 이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정조의 왕릉이 융릉 옆의 건릉이고 지금은 윤건릉으로 합쳐 부르고 있습니다.

[개비자나무]의 꽃말은 [소중, 사랑스러운 미소]입니다. 날씨가 몹시 추워졌습니다. 아무리 추워도 소중한 사람에게 사랑스러운 미소로 화답하는 아름다운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