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5일. 여운종 한국의 탄생화 연재] 가시나무에는 가시가 없다. 도토리가 열리는 상록참나무
오늘 한국의 탄생화는 [참나무과 참나무속]의 상록참나무류의 나무들입니다. 참나무는 도토리가 열리는 나무들을 통칭하여 부르는 말입니다. 중부 지방에 사시는 분들이라면 신갈, 떡갈, 상수리, 굴참, 졸참나무 등을 생각하실 것입니다. 가을에 참나무잎이 갈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면 도토리도 함께 익어갑니다. 그 나무 위에 다람쥐와 청설모가 쪼로로 올라가 볼이 불룩하도록 한 움큼 도토리를 입에 넣고 작은 앞발로 도토리를 앙증맞게 웅켜 쥐고 있는 사진은 멋진 가을을 표현하는 그림이 됩니다. 지금은 그 다람쥐들이 고목의 깊은 곳에서 추위를 피하며 겨울잠을 청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 제주도와 남부 지방에는 도토리나무인데 가을에 잎이 지지 않고 겨울에도 푸른 잎을 자랑하는 상록 참나무들이 있습니다. 오늘 한국의 탄생화는 바로 그 상록 참나무들입니다. 상록 참나무들도 낙엽 참나무들과 마찬가지로 봄에 치렁치렁 길게 늘어지는 꽃이 피고 가을에 도토리가 열립니다. 상록 참나무의 도토리도 묵을 만들어 먹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탄생화에는 자생 나무 8종, 재배 나무 1종의 상록 참나무 등재되어 있는데 모두 '가시나무'라는 접미어가 붙었습니다.
오늘의 주인공인 상록 참나무에는 멸종 위기 2급 보호종인 [개가시나무]를 비롯하여 [가시나무], [붉가시나무], [종가시나무], [참가시나무] 등 8종은 자생종이고 [졸가시나무]는 사람들이 식재해주어야 하는 재배종입니다.
이 중 붉가시나무는 함평 기각리에 천연기념물 110호로 지정된 자생 군락지가 있는데 이곳이 현재까지 붉가시나무가 올라올 수 있는 북방한계선입니다.
나무 이름만 보아서는 무시무시한 뾰족한 가시가 붙어 있을 것 같지만 참나무에 가시는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상록 참나무의 '가시'는 '도토리'를 의미하는 제주도 방언으로 추정됩니다.
반면에 뾰족한 가시를 의미하는 뜻으로 '가시'가 들어간 이름의 나무들도 있는데 '감탕나무과'의 [호랑가시나무]는 잎의 끝이 방패를 닮아 뾰족뾰족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고, 장미과의 [용가시나무], [돌가시나무]는 줄기에 진짜 가시가 달려 있어 붙여진 이름입니다.
참나무. 식물의 이름에 '참'이라는 접두어가 붙어 있으면 '진짜', '좋은', '훌륭한'이란 의미가 있습니다. 반대로 원물보다 좀 부족하다 싶은 것에는 '개'가 붙어있습니다. 꽃잎을 먹을 수 있는 진달래는 참꽃이고, 아무리 예뻐도 먹을 수 없는 철쭉은 개꽃이라 불립니다. 그래도 나무 중에는 참나무는 있어도 개나무는 없으니 그나마 다행입니다. 일상 언어에서도 '참'이 들어가면 좋은 의미로 많이 쓰이지만 '개'자가 들어가 있으면 거의 욕일 경우가 많습니다.
[참]의 철학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철학이 추구하는 삶의 가치는 진선미(眞善美)입니다. 이 아름다운 말이 미스코리아 순위로 사용될 때는 철학자로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습니다. 예쁘다는 것은 미의 척도가 될 수는 있어도, 선함과 참됨의 척도는 될 수 없는 까닭입니다.
그중에 '참됨', '옳음'을 의미하는 진(眞)은 [진실(眞實)]과 [진리(眞理)]로 나눌 수 있습니다. 영어로는 [Truth]로 혼용되는 이 단어는 서로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진실은 사실성을 의미합니다. 진리는 삶을 살아가는 이치를 말합니다. 그래서 진실은 객관적인 평가가 가능합니다. 상대되는 어떤 것이 진실일 경우 반대쪽에 있는 것은 흔히 거짓이 됩니다. 지동설이 사실이 되자 천동설은 거짓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진리는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사람마다 추구하는 가치관이 다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이 방향이 옳고 다른 사람에게는 저 방향이 옳을 수 있습니다. 똑같은 사람이라도 어렸을 때와 젊을 때와 늙었을 때의 가치관은 다릅니다. 부자로 살 때와 가난하게 되었을 때의 삶의 방법도 달라야 합니다. 진리는 주관적인 가치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종교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종교가 인류의 공동 선(善)을 추구하고 교인들에게 그리 살라고 가르치고 있다면 그 종교는 기본적으로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교의 만민에 대한 박애의 사랑, 불교의 자비, 유교의 인의예지 등은 참 좋고 옳은 가치이고 사람이 마땅히 따라야 할 진리입니다. 문제는 포용성입니다. 진리는 사람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차이를 인정하고 배려해야 하는 것입니다. 낙엽 참나무가 상록 참나무에게 '나는 참나무이지만 너는 참나무가 아니라 가시나무야'라고 한다면 옳은 것은 아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내 것, 내가 믿는 종교는 옳고 다른 것을 틀렸다고 하는 것은 진실과 진리를 오역한 오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