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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0일. 여운종 한국의 탄생화 연재] 가을의 끝. 겨울의 시작. 이 시기 길거리 화분의 주인공은 나야 나. 꽃양배추

[11월 30일. 여운종 한국의 탄생화 연재] 가을의 끝. 겨울의 시작. 이 시기 길거리 화분의 주인공은 나야 나. 꽃양배추

영하의 추위가 몇 번 지나가고 첫눈이 폭설이 되어 내리면 길거리의 꽃들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고 내년의 새봄을 기약하며 아쉬운 한 해의 삶의 기억을 겨울의 하얀 심연으로 밀어냅니다. 우리 집 공용주차장 앞 둥근 화분에는 비교적 추위에 강해 지난달 심었던 샐비어(사루비아)가 꽃잎을 떨어뜨리지도 못한 채 얼은 채로 시들어버려 보는 이의 마음을 안타깝게 합니다.

그렇다고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모든 생명붙이들이 다 추위 앞에 기가 죽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 이맘때 중부 지방 길거리의 화분에는 '이 거리의 주인공은 나야 나'를 웅변하려는 듯이 온통 [꽃양배추]로 채워져 있습니다. 몇 년 전 첫눈이 펑펑 오는 아침, 눈 사진 몇 장 건지려 나갔던 집 앞 삼덕공원에는 첫눈을 맞이하는 꽃양배추들이 그 하얀 눈과 어울려 더욱 아름답게 피어 있었습니다. 꽃양배추는 양배추의 원예종으로 더위에는 약하지만 추위에 무척 강해 지금 길거리 화분과 화단에 조경으로  심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아이입니다. 대체적으로 배추 속의 색깔이 연한 노란색과 밝은 자주 보라색의 두 종류가 있는데 배추의 형태와 어울려 몸 자체가 활짝 피어있는 꽃처럼 보입니다.  가지런히 줄을 맞추어 색깔별로 심어진 녀석의 모습은 마치 국빈 방문 시 사열하는 멋진 의장대를 보는 듯합니다.


여기서 잠깐 퀴즈. 꽃양배추는 먹을 수 있을까요?  배추니까 당연히 샐러드 등으로 먹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요리를 잘하면 아삭한 식감에 맛있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거리에 심어둔 꽃양배추를 뽑아가시는 분은 없겠지요?

이런 꽃양배추의 꽃말은 배추와 같은 [축복과 이익]입니다.

추위에 강한 이 녀석도 12월 중순을 넘기면 결국 시들고 마는데요, 뽑지 않고 그대로 둔다면 내년 봄에는 이 아이들의 시든 몸에서 올라오는 노란 배추꽃의 향연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몇 해 전 봄에 초등 동창들과 함께 간 봄 소풍, 세계의 다양한 봄꽃들로 멋지게 꾸며놓은 순천만국가정원을 관람하고, 먼 길을 왔으니 마저 둘러보고 가자며 들른 순천 낙안읍성 입구에는 미처 뽑지 못했는지 일부러 그냥 둔 것인지 화분마다 꽃양배추 꽃이 한 아름씩 피어있어 즐거움을 더해 주었습니다. 또 몇 년 전 봄에 안양 시청 민원실과 동네 화분에서도 예쁜 꽃양배추 꽃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11월이 어느덧 종착지에 도착했습니다.  통상 9, 10, 11월을 가을로 분류하는데요, 11월 초중순은 단풍의 세상이었지만 하순으로 접어들며  아침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며 순식간에 겨울을 맞이하였습니다. 한국의 탄생화도 11월 1일 모과나무로 시작하여 늦게 피는 꽃들과 여러 가지 단풍과 열매를 섭렵하고 오늘 꽃양배추까지 왔습니다.


이제 12월, 1월의 한 겨울로 접어들면 나무와 풀들은 더욱 움츠려 들겠지만 그래도 그 한 겨울을 버티며 살아가는 아이들을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민들레와 같은 여러해살이풀들은 땅속에서 뿌리로, 코스모스와 같이 한해살이풀들은  생명의 씨앗으로, 또 맥문동과 같은 아이들은 아무리 추워도 푸른 풀을 유지한 채 겨울을 버틸 것입니다.  나무들 또한 어떤 아이는 나뭇잎을 떨구고 맨몸으로, 상록수들은 안간힘을 다해 겨울 추위와 바람을 이겨내며 자기 잎들을 지켜내려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힘든 겨울이 지나면 여지없이 봄이 다시 우리에게 올 것입니다.

2024년의 가을을 우리 부부에게 선물로 주신 대자연과 하느님께 또한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아름다웠던 가을을 나와 놀아 준 모든 친구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보존]과 [순환].

철학자가 깨달은 우리 우주와 생태계를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규칙입니다. 그리고 그 순환의 시계는 이제 우리에게 2024년의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이하라 일러줍니다. 아직은 가을이라 우겨볼 수 있는 오늘, 11월의 마지막 날, 가을에 못다 한 추억을 마무리하시고, 꽃양배추의 꽃말처럼 서로서로를 축복하고 또 축복을 받으며 그래서 모두가 이익이 되는 축복의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아듀 2024 가을. 그 멋졌던 하루하루를 기억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