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 여운종 한국의 탄생화 연재] 詩는 삶과 꿈을 가꾸는 언어의 집. 詩의 날. 詩의 향기가 나는 모과나무
11월의 시작입니다. 가을은 이제 온 힘을 다해 마지막 단풍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올해 봄. 겨울의 마파람을 밀어내며 찬란하게 시작했던 연둣빛 새싹의 환희는 이제 빨강으로 노랑으로 또는 갈색의 향연으로 노을이 지듯 그렇게 저물어가고 있습니다. 단풍이 지고 나면 낙엽이 지는 대부분의 나무들은 잎을 모두 떨구고 내년 새봄의 희망을 품고 긴 겨울잠을 자게 될 것입니다.
11월 1일 오늘은 우리나라의 [詩의 날]입니다.
세계 詩의 날은 1999년 유네스코가 정한 3월 21일이지만, 우리나라는 그보다 빠른 1987년부터 11월 1일을 ‘시의 날’로 제정해 기념하고 있습니다.
당시 선언문을 보면 [시의 날] 제정 경위를 알 수 있습니다.
"시는 삶과 꿈을 가꾸는 언어의 집이다.
우리는 시로써 저마다의 가슴을 노래로 채워 막힘에는 열림을, 어둠에는 빛을, 끊어짐에는 이어짐을 있게 하는 슬기를 얻는다.
우리 겨레가 밝고 깨끗한 삶을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일찍부터 그러한 시심을 끊임없이 일구어 왔기 때문이다.
이 땅에 사는 우리는 이에 시의 무한한 뜻과 그 아름다움을 기리기 위하여 신시 80년을 맞이하는 해 육당 최남선의 '해(海)에게서 소년에게'가 1908년「소년」지에 처음 발표된 날, 십일월 초하루를 '시의 날'로 정한다."
11월 한국의 탄생화는 열매와 단풍에 맞춘 식물들이 대부분이고 늦은 가을에도 꽃이 피는 몇 종의 식물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1월을 열어가는 첫째 날 한국의 탄생화는 세계의 탄생화와 서양모과(Medlar)와 맞춘 [모과나무]입니다. 4월에서 5월 사이에 작고 앙증맞은 연한 홍색의 아름다운 꽃이 피는 데 요즘은 화단이나 가로수로도 많이 심고 있습니다.
열매는 구월부터 크기 시작하여 10월이면 따도 좋을 만큼 커집니다. 그 모과를 따지 않았다면 지금쯤이면 모과 열매가 노랗게 익었겠지만, 모과의 향긋한 향을 생각한다면 아직 연두색일 때 따서 차 안이나 집 안에 두고 오래도록 모과향을 즐기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물론 모과차나 모과주를 만들어 먹는 것도 좋습니다. 우리 집에도 며칠 전에 선물로 들어온 모과 몇 개에 배를 넣어 모과청을 만들고 있습니다. 모과는 과즙이 적기 때문에 배를 섞으면 양도 많이 나오고 맛도 더 좋아진다고 합니다. 담근 후 일주일 정도면 먹을 수 있다고 하니까 오늘 내일이면 아내의 정성이 담긴 향긋한 모과차를 마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모과는 몸에 좋은 성분을 많이 가지고 있지만 아쉽게도 시큼하고 떫은맛 때문에 생과일로 즐기기는 어렵습니다. 동물들도 모과의 떫은맛 때문에 모과를 생으로 먹진 못합니다. 그래서 모과의 열매는 다른 열매처럼 새나 동물의 먹이가 되지 못하고 스스로 새까맣게 썩어 씨를 발아시킵니다.
11월이 열렸습니다. 청량리역 지하철에서 만났던 '가을 덕수궁'이란 시 한 편을 소개합니다. 나뭇잎들이 서로 포개어져 살듯이, 우리는 누군가와 포개어져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 서로 다른 2024년의 11월을 살게 되겠지만 모과의 기분 좋은 향기처럼 우리와 포개어 사는 가족과 이웃들에게 아름다운 향기가 나는 11월을 살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과]는 나무에 달린 참외란 뜻인 목과(木瓜)가 변하여 모과가 되었습니다. 우리나라의 모과는 중국이 원산지로 옛날에는 연인 간의 사랑의 증표로 줄 만큼 귀하게 여기던 과일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고려 말에 들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