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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역사. 1938년 3월 10일] 도산 안창호 선생. 경성대학병원에서 순국

[오늘의 역사. 1938년 3월 10일] 도산 안창호 선생. 경성대학병원에서 순국

1938년 오늘은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 조국의 해방을 보지 못하고 타계하신 날입니다.

도산 안창호 선생께서는 생전에 이런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역사에 다소 관용하는 것은 관용이 아니요 무책임이니,
관용하는 자가 잘못한 자 보다 더 죄다]


만약 선생께서 지금 살아계셨다면 선생께서는 현 대한민국의 친일 정부에게 어떤 말씀을 하시게 될까요?

안창호 선생의 삶을 되돌아보며 선생을 기억하고 추모합니다.

안창호(安昌浩, 1878년 11월 9일~1938년 3월 10일)는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사상가이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지도자로 활동했습니다. 그는 도산(島山)이라는 호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1. 생애와 활동

초기 생애
황해도 강서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학문에 열중했습니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을 계기로 민족의식을 키우고,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활동했습니다.

독립운동과 민족 계몽
1902년 미국으로 건너가 노동을 하며 학업을 병행했고, 1907년 귀국하여 신민회를 조직하여 독립운동과 교육 사업을 전개했습니다.

평양에 대성학교를 설립하고 교육을 통해 민족 의식을 고취하려 했습니다.

1910년 한일강제병합 후 일본의 탄압을 피해 다시 미국으로 망명하여 흥사단을 조직하고 독립운동을 지속했습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활동
1919년 3.1운동 이후 상하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자, 그는 국무위원과 내무총장을 맡아 임시정부를 이끌었습니다.

이후에도 미국과 중국을 오가며 독립운동과 동포 교육에 헌신했습니다.


2. 사상과 철학
실력양성론: 독립을 위해 국민 개개인의 실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습니다.

교육과 청년운동: "무실역행(務實力行, 참된 것을 힘써 실행한다)"을 강조하며, 도덕성과 실력을 갖춘 인재 양성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민주주의와 자치운동 : 민족의 자치 능력을 기르고, 독립 이후 민주주의 국가를 건설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3. 최후와 유산
1932년 윤봉길 의거 이후 일본 경찰에 체포되어 고문을 받았으며, 건강이 악화되었습니다.

1938년 3월 10일 경성(서울)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사상과 정신은 흥사단을 통해 이어졌고,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독립운동 정신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현재 서울에 도산공원과 도산안창호기념관이 있으며, 그의 업적을 기리는 다양한 사업과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