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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운종의 철학단상(哲學短想)] 성탄특집 7. 성탄의 의미는 태양처럼 높이 멀리 있는 하느님을 우리에게로 가까이 끌어내려 낮게 만드는 일

[여운종의 철학단상(哲學短想)] 성탄특집 7.  성탄의 의미는 태양처럼 높이 멀리 있는 하느님을 우리에게로 가까이 끌어내려 낮게 만드는 일

성탄절 철학 이야기. [높음과 넓음]. 오늘은 그 네 번째 이야기입니다. 우주에서는 `높다`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위와 아래를 정할 수 없는 까닭입니다. 나로부터 멀다는 것은 `높음`이 아니라 `넓음`을 나타냅니다. 빛의 속도로 달은 1초1/4의 거리에 있고, 태양은 8분 20초, 태양계의 끝인 오르트 구름의 경계까지는 6개월, 우리 은하계의 중심까지는 약 3만 년, 가장 가까운 은하인 안드로메다은하까지는 250만 년, 우주의 경계까지는 학자에 따라 의견이 다르지만 약 1천억 광년 정도의 거리와 그 거리만큼의 넓이를 가졌습니다. 물론 우리의 관점으로 빛의 속도로 1천억 년을 간다 해도 우주의 끝에 닿지는 못합니다. 우리 우주는 빛의 속도보다도 더 빨리 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빛의 입장에서는 순식간에 우주의 끝에 도달합니다. 이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 따라 빛의 속도가 되면 시간은 멈추고 공간은 완전히 축소되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태양이 달처럼 가까이 있으면 어찌 될까요? 물론 그 뜨거움으로 지구가 불바다가 되겠지만, 크기로만 본다면 지구의 하늘은 태양으로 가득 차고도  넘칠 것입니다. 성탄의 의미는 태양처럼 높이 멀리 있는 하느님을 우리에게로 가까이 끌어내려 낮게 만드는 일입니다.

불경스럽다고요? 철학자의 눈에는 그것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일로 보입니다.  우리가 성탄절로 기념하는 예수님의 탄생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낮은 하느님은 곧 넓은 하느님입니다. 우리를 지배하고 다스리는 하느님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생활하시며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하는 하느님입니다. 성전에서만 만나는 특별한 하느님이 아니라,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에게나 일상에 존재하는 보편 하느님입니다.

모든 생명은 연대되어 있습니다. 지구의 모든 생명은 한 팀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 팀에서 함께 경기를 했는데 어떤 사람은 이겼는데 어떤 사람은 질 수는 없습니다. 이겼으면 함께 이긴 것이고 만약에 졌다면 함께 진 것입니다. 하느님의 심판을 구원이라고 생각한다면 적어도 그 구원은 개별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나는 구원받았는데 너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것은 팔은 구원을 받았는데 다리는 구원받지 못한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생존의 법칙과 같습니다. 그것은 릴레이 달리기 게임과도 같습니다. 40억 년을 이어온 지구 생명의 릴레이. 수많은 우여곡절을 극복하고 수십, 수백만 번의 바통터치가 무사히 이어졌기에 지금의 내가 존재합니다.

생명의 연대. 우리 지구 생명은 하나의 생명과도 같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식사가 되어 주며 이 거대한 지구 유기체는 오늘도 건강하게 살아갑니다. 지구 생명 하나하나의 삶은 우리 몸 수십조 개의 세포 하나하나가 살아가는 방식과 동일합니다.

생명은 개별적으로 존재하는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거대한 한 생명체의 세포와 같은 부분일 뿐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닫는다면 우리는 지구 환경의 보호와 보전을 위해, 환경의 악화와 변화로 멸종해 가는 다른  생명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가장 최우선적으로 시행할 것입니다. 그것이 또한 나와 나의 가족과 인류를 지키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인류가 그렇게 하지 못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돈과 이익으로 대변되는 경제구조 때문입니다.

최대 이익이 최대의 선이 되는 세상. 그러나 조금만 생각해 보면 자본은 인간의 만든 가상 화폐와 다를 것이 없고 이익은 한갓 상상에 지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 생명과 생명을 담고 있는 지구와 우주 환경만이 실존이며 실물입니다. 우리는 제4차 산업혁명이라 부르는 과학기술적인 변혁에 맞추어 하루라도 빨리 새로운 정신세계로 업그레이드하여야 합니다. 그것이 새로운 성탄의 철학적 의미입니다.

오늘도 성탄의 의미를 생명의 연대와 함께 생각해 보시는 하루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