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운종의 철학단상(哲學短想)] 성탄특집6. 고귀함을 버리고 평범함으로, 신의 아들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로 이룬 거룩한 탄생. 성탄. 그리고 원자력 안전의 날
성탄절 특집 철학 이야기, 오늘은 [높음과 넓음] 세 번째 이야기입니다. 성탄의 철학적 의미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높이려 하지만, 하느님은 사람에게로 낮아지려고 하는 것]이란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은 서로 전혀 다른 목적이 있습니다.
인간이 신을 높이려는 의도를 태양과 달의 비유로 말해보겠습니다. 아무래도 제가 우주를 연구하는 철학자이다 보니 이런 비유가 좀 편하답니다. 태양은 스스로 빛나는 하느님으로, 달은 그 빛을 받아 반사하는 권력자로 비유해 봅니다.
지구에서 보았을 때 태양과 달의 크기는 거의 똑같습니다. 달은 빛의 속도로 약 1과 1/4초의 거리에 있고, 태양은 약 8분 20초의 거리에 있습니다. 지구를 벗어나면 공간과 시간은 같은 개념입니다. 달을 지름 1cm의 작은 구슬이라 한다면, 지구는 지름 4cm의 탁구공 만 해지고, 태양은 지름 4.4m의 커다란 방만해집니다. 달을 지구에 담으면 약 60개를 넣을 수 있고, 지구를 태양에 담으면 100만 개의 지구가 들어가도 여유가 있습니다. 그런데 지구에서 달과 태양의 크기는 같아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당연히 태양이 훨씬 더 멀리 있기 때문입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더 높이 있는 까닭입니다. 달은 지구보다도 작은데 가까이 있는 까닭에 태양과 같은 크기가 되었습니다. 태양은 하느님이고 달은 태양의 빛을 반사하는 권력자로 비유해 봅니다. 그것이 왕이거나 귀족과 같은 신분일 수도 있고, 종교의 제사장이거나 지도자일 수도 있습니다. 이들은 `거룩함`이란 그럴듯한 포장을 하여 하느님을 되도록 멀리 쫓아내려 합니다. `멀다`의 다른 말은 `높다`입니다. 그러면 태양과 지구 사이에는 더 많은 달들이 생기고 그 달이 태양의 역할을 하려고 할 것입니다. 실제로는 지구보다도 훨씬 작은데도 말이지요. 그런데 달빛으로는 생명이 살 수 없습니다. 광합성하기엔 턱없이 빛이 부족하고, 몸을 따뜻하게 할 수도 없습니다.
철학자의 눈으로 보는 `성탄`은 이런 인간의 음흉한 의도에 하느님께서 태클을 건 사건입니다. 고귀함을 버리고 평범함으로, 신의 아들이 아니라 사람의 아들로 거룩한 탄생이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하느님께서 인간과 모든 생명들과 함께 살고자 하는 의도로 보입니다. 그것은 예수의 가르침처럼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며, 절망한 이에게는 희망을 주고, 도움이 필요한 이에게 도움을 주고, 슬퍼하는 이에게는 위로를 주고, 정의에 목말라하는 자에게는 힘을 주는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탄은 아직까지도 현재진행형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자 합니다. 그것의 이름은 `사랑`입니다.
그리고 12월 27일 오늘은 원자력 안전과 진흥의 날입니다. 그런데 원자력을 함부로 진흥시켜서는 곤란하겠지요. 그래서 원자력 안전의 날로 수정해서 소개합니다.
아인슈타인이 상대성 이론을 연구하는 과정에서 물질의 질량이 거대한 에너지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알아내었습니다. E= mc^2의 공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제 철학 이야기 [유레카 3]에서도 여러 번 언급하였지만 물질과 에너지는 우주 빅뱅 과정에서 팽창의 반작용으로 생성된 수축의 산물입니다. c는 빛의 속도이므로 c의 제곱은 빚의 팽창력이라 하면 될 것 같습니다. 위 공식을 m=E/c^2로 치환하면 질량 즉 물질은 에너지 수축의 산물임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이 작은 공식 하나로도 우주의 생성원리를 깨달을 수 있는 훌륭한 소재가 됩니다.
아무튼 원자력의 사용으로 인해 인류는 급격히 힘이 세어지게 되었습니다. 원자력은 에너지를 얻는 유용한 방법이긴 하지만 그 과정에서 나오는 방사능 폐기물은 수만 년 만을 밀폐 보관하여야 하는 괴물 쓰레기입니다. 또한 체르노빌이나 후쿠시마에서 보듯이 인간의 실수이든, 불가항력적인 자연재해이든 문제가 생기면 후손 대대로 고통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절대로 그런 일이 발생하면 안 되겠지만 만약 핵 전쟁이라도 벌어지는 날이면 인류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의 대멸종 사태를 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물리적 힘이 세어지면 정신적인 힘도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원자력 안전의 날. 우리는 우리가 가진 힘만큼 정신적 성장을 함께 하였는지 되돌아보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