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0일. 창백한 푸른 점.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을 기억하며]
오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사람은 미국의 우주천문학자인 칼 세이건(Carl Edward Sagan)입니다. 1996년 12월 20일 오늘 그의 고향인 우주의 심연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의 저서인 [코스모스]는 우주를 공부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입문 책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가 소개하고자 하는 것은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입니다.
1990년 2월 14일. 당시 보이저 계획의 화상 팀을 맡고 있던 '코스모스'의 저자 칼 세이건은 지구에서 64억 Km 떨어져 태양계의 끝을 향해 날아가던 보이저 1호를 지구 쪽으로 돌려 사진을 찍게 합니다.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은 칼 세이건이 그때 찍은 지구 사진을 보며 한 말입니다.
"여기 있다. 여기가 우리의 고향이다. 이곳이 우리다.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이들,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 당신이 들어 봤을 모든 사람들, 예전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이곳에서 삶을 누렸다. 우리의 모든 즐거움과 고통들, 확신에 찬 수많은 종교, 이데올로기들, 경제 독트린들, 모든 사냥꾼과 약탈자, 모든 영웅과 비겁자, 문명의 창조자와 파괴자,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 연인들, 모든 아버지와 어머니들, 희망에 찬 아이들, 발명가와 탐험가, 모든 도덕 교사들, 모든 타락한 정치인들, 모든 슈퍼스타, 모든 최고 지도자들, 인간 역사 속의 모든 성인과 죄인들이 여기 태양빛 속에 부유하는 먼지의 티끌 위에서 살았던 것이다.
지구는 우주라는 광활한 곳에 있는 너무나 작은 무대이다. 승리와 영광이란 이름 아래, 이 작은 점의 극히 일부를 차지하려고 했던 역사 속의 수많은 정복자들이 보여준 피의 역사를 생각해 보라. 이 작은 점의 한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이, 거의 구분할 수 없는 다른 모서리에 살던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던 잔혹함을 생각해 보라. 서로를 얼마나 자주 오해했는지, 서로를 죽이려고 얼마나 애를 써왔는지, 그 증오는 얼마나 깊었는지 모두 생각해 보라. 이 작은 점을 본다면 우리가 우주의 선택된 곳에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사는 이곳은 암흑 속 외로운 얼룩일 뿐이다. 이 광활한 어둠 속의 다른 어딘 가에 우리를 구해줄 무언가가 과연 있을까. 사진을 보고도 그런 생각이 들까? 우리의 작은 세계를 찍은 이 사진보다, 우리의 오만함을 쉽게 보여주는 것이 존재할까? 우리의 유일한 고향 이 창백한 푸른 점의 사진보다, 지구를 소중하게 다루고, 이 소중한 땅에서 살아가는 서로를 따뜻하게 대해야 한다는 책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을까? (칼 세이건. 위키백과 인용)"
이보다 더 위대한 경전이 있을까요? 이보다 더 가슴을 쥐어짜는 웅변이 있을까요? 우리 지구는 우주의 입장에서는 하나의 티끌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 티끌 안에서 지구가 약 3만 번 자전하는 동안, 약 80번 태양을 공전하는 동안 아옹다옹 티격태격 사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이 티끌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과 사상들이 티끌의 범위를 벗어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형이상학은 이 티끌의 한계를 벗어나고자 하는 숭고한 욕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