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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30일. 여운종 한국의 탄생화 연재] 흑진주를 품에 안은 가을 들판의 보석 누리장나무

[9월 30일. 여운종 한국의 탄생화 연재] 흑진주를 품에 안은 가을 들판의 보석 누리장나무

9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9월이 가을의 문을 열었다면 내일 10월부터는 가을의 중심입니다. 9월을 보내는 오늘 한국의 탄생화는 가을 [마편초과] 식물입니다. 마편초과는 세계적으로는 100여속에 2,600여 종의 식물이 있다고 하는데 한국의 탄생화에는 10속 32종이 등록되어 있습니다.

오늘의 대표 탄생화인 [누리장나무]는 우리나라 어디서나 잘 자라고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동물에게서 나는 누린내 비슷한 냄새가 난다고 해서 [누린내나무]란 별명이 있지만 그리 역겹거나 심하게 냄새가 나지는 않습니다.

보통 7월부터 꽃이 피기 시작하여 지금은 개화기를 살짝 지나 결실기에 접어들고 있습니다. 꽃은 흰색에 가까운 엷은 붉은색의 꽃잎에 수술이 메기수염처럼 길게 뻗쳐 나온 독특한 모양 때문에 멀리서도 쉽게 알아볼 수 있습니다.

꽃에서는 누린내가 아닌 백합향이 나지만 누린내가 날 것이라는 선입견 때문인지 저도 산행을 하며 여러 번 만났지만 꽃향기를 맡아볼 생각을 못 했습니다.

가을이 되면 누리장나무는 붉은 별 모양의 열매 받침이 생기고 한가운데 사파이어를 연상케 하는 검푸른 열매가 가을 하늘과 어울려 탄성이 나올 정도로 멋진 모습으로 변신합니다.

[누리장나무]의 꽃말은 [친애]와 [깨끗한 사랑]입니다.

그러고 보면 아름답고 독특한 꽃과 열매를 맺는 누리장나무에게 꽃이 피기 전 냄새가 조금 난다고 누린내가 나는 나무라는 불명예스러운 이름을 계속 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은 나무의 입장에서는 많이 억울할 듯합니다. 다만 아름다운 꽃말로 그 억울함이 해소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층꽃나무속]의 야생화 [층꽃나무]와 [누린내풀속]의 [누린내풀]도 오늘의 주요 탄생화입니다. 전에는 같은 층꽃나무속으로 분류되다가 개정된 국생정 자료에서는 서로 다른 속으로 나뉘어 이에 따르도록 하겠습니다.

나무와 풀은 목질의 유무에 따라 결정되는데,  학술적으로는 목질을 만드는 리그닌(lignin)의 유무와 부피 생장을 하는 형성층의 형태로 갈라집니다. 풀과 달리 나무는 땅 위에 자라는 딱딱한 껍질의 줄기를 가졌으며, 이 줄기의 전부 또는 일부가 겨울 동안 남아 있다가 다음 해에 다시 자랍니다.  그래서 온대지방의 나무는 천천히 자라는 겨울과 빨리 자라는 여름의 목질이 다르게 나타나고 나무를 잘랐을 때 나이테로 표시됩니다. 반면에 풀은 한해살이풀, 여러해살이풀로 나뉘는 데 겨울을 어떻게 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겨울에 죽지 않고 사는 풀 중에는 잎은 시들고 뿌리만 살아있다가 봄에 새싹을 내는 풀이 있고, 맥문동처럼 겨울에도 잎이 시들지 않는 상록성 풀이 있습니다. 풀들은 형성층이 없어 부피 성장을 하지 못해 나무와 구별됩니다.

남부 지방과 제주도에서 주로 자생하는 [층꽃나무]는 나무로 분류되기는 하지만 키도 그리 크지 않고 목질로 야리야리해 [층꽃풀]이라는 별명과, 꽃이 층층이 피기 때문에 [구층탑], 난의 향기가 나는지 [난향초]란 별명이 있습니다. 꽃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여인의 풍미를 간직해 [가을의 여인]이라는 고고한 꽃말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누린내풀]은 향기가 나긴 하는데 누리장나무처럼 누린내가 난다 하여 누린내풀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향기든, 누린내처럼 꺼리는 향기든, 꽃이 향기를 내는 것은 곤충들을 유인해 수정을 하기 위한 방편입니다.


식물이든, 동물이든 생물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삶의 행위 중 하나는 종족 번식입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은,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고 있는 모든 생명은 지구 생명의 역사 40 억년 간 수십억 번의 번식 행위가 단 한 번도 끊김 없이 성공적으로 진행해 왔다는 뜻입니다. 생명은 그 창조와 진화에 있어 그 자체로 놀라운 기적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각자의 생일은 다르지만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생명의 나이는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