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2일. 여운종 한국의 탄생화 연재] 봄의 전령사 변산바람꽃과 봄의 혁명
[2월 22일. 여운종 한국의 탄생화 연재] 봄의 전령사 변산바람꽃과 봄의 혁명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계절의 시계는 우수를 지나 경칩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쌀쌀한 겨울 날씨이지만 이제 곧 봄바람이 불기 시작할 것입니다.
오늘 한국의 탄생화는 바람꽃 종류 중 가장 먼저 꽃이 피는 [미나리아재비과 너도바람꽃속]의 `봄의 전령사`라 불리는 [변산바람꽃]과 멀리 남부 유럽에서 건너온 [노랑너도바람꽃]입니다.
[노랑너도바람꽃]은 지금 같은 늦겨울과 봄에 걸쳐 꽃이 피는 아이로 눈 속에서 핀다고 [겨울바람꽃], 학명을 따서 [히에말리스너도바람꽃]이란 별명으로도 불리며 아직 우리나라 야생에는 적응하지 못하고 사람들이 식재하는 아이입니다. 노란색의 꽃이 피는데 꽃말이 없어 겨울을 이겨 피는 꽃이란 의미로 [찬란한 승리]라는 꽃말을 붙여 주었습니다.

[변산바람꽃]은 우리나라에서만 자생하는 [한국특산식물]입니다. 1993년 선병윤교수가 부안 변산반도에서 자생하는 이 꽃을 학회에 처음 발표하며 붙인 이름입니다.



변산바람꽃의 학명 [Eranthis byunsanensis B.Y.Sun]에는 너도바람꽃속에 속하며 변산에서 발견되었다는 종명과, 명명자인 선병인 교수의 이니셜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꽃이 처음부터 변산반도에만 있지는 않았을 터이지만, 그리고 이 꽃이 우리나라에 그때 처음 피었던 것도 아니었겠지만 아무도 이 아이에게 관심을 두지 않고 이름을 불러주지 않을 때, 선병인 교수님의 관심이 이 아이에게 이름을 붙여주고 `봄의 전령사`라는 별명도 얻게 해 주었답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남부 지방에서는 보통 2월 중순부터 [변산바람꽃]이 피기 시작하여 3월에 만개합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면 올해 첫 출사에서 [변산바람꽃]을 만났다는 야생화 사진사들의 이야기가 변산바람꽃의 청초한 모습과 함께 무용담처럼 올라오고 있습니다. 남도 야산의 양지바른 곳, 나무 밑동에서는 채 20cm도 되지 않는 작고 여린 꽃, [변산바람꽃]이 소리 없이 봄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제가 사는 안양 수리산에도 변산바람꽃 자생 군락지가 있습니다. 위치는 1급 비밀이긴 하지만 살짝 공개하자면 병목안에서 공군부대로 올라가는 길, 제2만남의 광장을 지나 차량 차단기에서 약 500m 더 올라가면 변산바람꽃 군락지라는 안내판이 있는데 거기 양쪽계곡입니다. 예년 같으면 수리산 변산바람꽃도 올라왔을 듯 싶은데 올해에는 늦추위 탓에 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아무튼 봄꽃들의 개화 시기가 점점 빨라지는 것이 지구온난화를 실감하게 합니다. 수리산은 수도권인지라 꽃이 피면 대포 카메라를 들고 이 작은 꽃을 찍겠다는 사진사들이 소리 소문 없이 몰려듭니다.

1993년 이전에 어느 누군가가 수리산의 이 꽃을 먼저 알아보고 학회에 등록했다면 `변산바람꽃`이 아니라 `수리산바람꽃`으로 불렸을 텐데요, 수리산이 동네 뒷산인 저에게는 좀 아쉬움이 남습니다.
우리 부부도 몇 년 전에 처음 변산바람꽃을 보았을 때의 감동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변산바람꽃을 만나면 누구나 겸손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직 녹색이라고는 없는 겨울 맨땅 위로 솟은 작고 여린 하얀 꽃에 저절로 눈길이 가고, 이 아이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무릎을 꿇고 엎드려야 합니다. 엉덩이를 하늘 높이 치켜들고 얼굴은 땅바닥에 바짝 낮추고 렌즈 통이 엄청 긴 대포 카메라로 꽃의 초점을 맞추는 모습이 상상이 가시지요? 우리가 사진으로 만나는 변산바람꽃의 아름다움에는 사진사들의 이런 우스꽝스러운 포즈가 있었기에 가능합니다.

이런 변산바람꽃의 첫 번째 꽃말은 [기다림]입니다. 봄을 기다리듯 꽃이 피기를 기다리는 마음이지요, 두 번째 꽃말은 [비밀스러운 사랑]입니다. 아직 아무것도 없는 계곡, 나만 알고 있는 변산바람꽃 비밀 아지트에서 몰래 만나는 짜릿한 사랑, 그리고 마지막 꽃말은 그렇게 하얗게 온 마음의 애간장을 다 녹인 후에 다른 풀들이 올라오기 전, 언제 그랬느냐는 듯 하루아침에 사라져지고 마는 [덧없는 사랑]이랍니다.
봄은 변산바람꽃과 같은 작은 변화에서 시작됩니다. 봄이 오니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니 봄이 시작된 것입니다. 큰 혁명은 작은 움직임에서 시작됩니다. 지금 대한민국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도, 처음엔 작은 촛불에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 촛불 혁명의 도도한 흐름은 결코 멈추지 않아야 합니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구태와 봉건 의식으로부터 새롭게 도약해야 하는 정신 혁명의 시기입니다. 그것이 우리 후손들에게 물려줄 가장 값지고 아름다운 유산입니다.
우리는 [권력 중심 사회]를 벗어나 [역할분담 사회]로 나아가야 합니다. 돈의 권력, 계급의 권력이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는 악마와 손을 잡으면, 어떤 것은 힘없는 아르바이트생을 무릎 꿇리는 갑질로 나타나고, 어떤 것은 비겁하게 뒤로 거래하는 부정 청탁으로 나타나고, 어떤 것은 기수문화, 패거리 문화로 나타나고, 또 어떤 것은 더러운 성추행의 모습으로 나타나 `미투`의 열풍에 그 일생의 명예가 시궁창으로 처박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대통령이란 자가 그 권력의 맛을 들여 영구집권과 독재정권을 획책하면 12.3내란 같은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적폐는 봄이 겨울을 이기듯 서서히 민주주의의 바람을 타고 무너집니다.
철학자의 눈에는 이 모든 것이 대한민국의 봄의 시작을 알리는 거대한 진군의 소리 같습니다. 기존의 건물을 새 건물로 짓기 위해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옛 건물을 부수는 일입니다. 우리가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구태와 적폐를 부수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대한 국민은 이 혁명의 시기를 놓쳐서는 아니 됩니다. 이 모든 것이 변산바람꽃처럼 작은 촛불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목한 가정을 위해서는 작은 변화를 시도하십시오. 우리 부부들의 사랑을 돈독하게 하고 자녀들과의 서먹한 관계를 개선하는 것도 작은 변화에서 시작됩니다. 작은 배려, 따뜻한 말 한마디가 부부관계를 개선하고 간섭이 아닌 관심과 사랑이 아이들과의 관계도 변화시킵니다.
오늘은 [변산바람꽃]처럼 작은 것에 관심을 두고 작은 변화를 만들어 가는 하루 보내세요.
